지금의 자리에 세종문화회관 건립이 추진된 것은 1955년부터다.
전쟁 이후 다양한 행사와 공연을 수용할 시설이 없던 서울시는
1956년 다목적 공연장을 착공한다.
1961년 개관한 시민회관은 각종 기념식과 결혼식, 연주회, 영화 상영,
방송·연예 프로그램 등 민관의 다양한 행사를 위해 사용되었고
당시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1972년 발생한 화재로 시민회관은 전소되었고 2년 후 같은
자리에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건립이 추진된다. 세종기념사업회의
건의로 시민회관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착공 4년
만인 1978년 4월 14일 개관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된 세종문화회관은
당시로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파이프오르간과 수공예로 제작한
초대형 무대막을 대강당에 설치했다. 조명과 음향도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고 로비 2층과 3층에 드리운 대형 샹들리에와 비천상을
새긴 화강석 외벽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은
새로 건립되는 문화공간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글·사진 편집실
자료 및 사진 출처: 『세종문화N』, 국가기록원, 서울기록원
1956년 우남회관 착공식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회관’으로 불린 세종문화회관의 착공식
광경이다.
1961년 개관한 시민회관 전경 지하 1층·지상 4층에 10층 탑을 지닌 시민회관은 당시로선 초고층 건물로,
3,000여 객석과 최신 영사기 등을 갖춘 문화시설이었다.
1963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합동 결혼식 시민회관은 공연과 다양한 행사장으로 이용되었다. 1963년 4월에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26쌍의 합동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1956년 우남회관 착공식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회관’으로 불린 세종문화회관의 착공식
광경이다.
1961년 개관한 시민회관 전경 지하 1층·지상 4층에 10층 탑을 지닌 시민회관은 당시로선 초고층 건물로,
3,000여 객석과 최신 영사기 등을 갖춘 문화시설이었다.
1963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합동 결혼식 시민회관은 공연과 다양한 행사장으로 이용되었다. 1963년 4월에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26쌍의 합동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1970년 광복 기념 국악제 인파 1970년 8월 15일 광복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경축 국악제를
보기 위해 많은 관람객이 시민회관 앞에 모여
있다.
1972년 시민회관 화재 현장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민회관이 전소한다.
1970년 광복 기념 국악제 인파 1970년 8월 15일 광복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경축 국악제를 보기 위해 많은 관람객이 시민회관 앞에 모여
있다.
1972년 시민회관 화재 현장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민회관이 전소한다.
1978년 개관 당시 세종문화회관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후 79일간 142회의
개관 기념 공연이 펼쳐졌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공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내한해
관심이 더욱 집중 되었던 개관 기념 공연 중 합창 공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