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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속 세상

세상에 전하는 따뜻한 온기와 웃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박보영
박보영
“지금 세상에 필요한 작품!”, 드라마와 관련한 웹 기사에 남긴 이 댓글에는 ‘좋아요’ 수십 개가 달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한국 사회가 좀처럼 마주하기 싫어하는 주제, 정신질환을 정면으로 다룬다. 작가 이라하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한 이 드라마는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을 배경으로 의사와 간호사,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시각으로 풀어나간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실제 간호사로 일했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 현장감이 넘치고, 설득력이 높다. 가슴을 울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명신대학교 정신병동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진심만이 답이 아닌 질병

조울증, 공황장애, 망상장애, 우울증, 조현병, 과다행동장애(ADHD),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질환은 사실 감기만큼 익숙하다. 한국에서 2022년에 정신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459만 명에 달한다. 극 중 정신과 의사 여환은 말한다. “정신과는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데야. 뼈가 부러지면 정형외과에 가고,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는 거랑 똑같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전출 온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이다. 다은은 환자에게 언제나 진심을 다해 마음을 쏟는다. 하지만 약으로 아픔을 달랠 수 있었던 내과와 달리 환자의 감정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정신과는 난해하고 까다롭다. 정신질환자의 액팅 아웃(Acting Out, 갑작스럽고 돌발적인 행동)은 자신은 물론 다른 환자들까지 위험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선의는 언제든 악의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환자의 잘못도, 간호사의 잘못도 아니다. 그 병이 원래 그럴 뿐이다.
명신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들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상사의 가스라이팅과 직장 내 괴롭힘, 계속된 공무원 시험 낙방, 살인적인 과로, 왕따와 학교 폭력,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온 번아웃, 가족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 보이스피싱 피해 등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에 조금 더 노출됐을 뿐이다.
그 사람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질환

드라마가 정신질환을 다루는 방식은 넷플릭스의 전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닮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에피소드를 지켜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 증상과 원인, 관리 방법에 친숙해지고 자폐아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질환에 대해 친숙해지는 드라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신질환은 자폐증과 달리 언제든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은의 절친 유찬은 알고 보니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다은을 좋아하는 의사 고윤도 손가락 마디를 꺾는 강박이 있다. 다은의 동료 간호사 수연은 일과 육아 스트레스에 우울증과 해리 증상(기억상실)을 겪는다. 다은을 지켜주는 병동의 든든한 수간호사 효신도 조현병을 앓는 동생이 있다. 다은도 환자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우울증에 빠진다. 다은은 정신질환에 맞서는 간호사이면서, 정신질환자를 둔 주변인이고, 그러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당사자가 된다. 드라마가 정신질환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며 시작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끝맺는 이유다.
수간호사 효신은 말한다. “왜 하필 우리 애가, 왜 하필 우리 가족이, 왜 하필 내가… 정신병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요. 본인들만 안 아플 거라고 장담하지 마세요.”

고현정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은 ‘위기 단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의료기관에서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100만 명이다. 5년 전인 2018년(75만 2,976명)에 비해 무려 32.9%가 늘었다.
정신질환의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 조현병, 분열형·망상장애, 조증 에피소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중증도 이상 및 재발성 우울장애(중증 우울증) 등은 5대 중증 정신질환으로 분류된다. 5대 중증 정신질환도 인구 1,000명당 진료 인원이 2022년 11.8명으로 2018년(10.3명)에 비해 14.6% 증가했다. ‘숲속의 하얀 집’, 정신병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정신력이 약하다’, ‘유난스럽다’라고 단순히 치부해 왔지만 실제로는 ‘정신이 아픈’ 상태일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천천히 또는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보건복지부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2」의 설문 결과를 보면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에 동의하는 비율이 무려 83.2%다. 그만큼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은 ‘위기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혼자 삭이며 이겨내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인식으로 변화하여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초기부터 알맞은 치료와 주변의 도움이 있다면 ‘다른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다. 정신질환에 대해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이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다은은 독백한다. “우리는 모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라고.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전하고 싶어하는 마지막 메시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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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