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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지락(꿈知樂)

교사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상처받은 치유자

광주효동초등학교 서준호 교사
긍정의 힘으로, 애정의 깊이로
서준호 교사는 이른바 ‘상처받은 치유자’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연고로 빚어 타인들의 상처에 아낌없이 발라주며 산다. 교실에선 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놀이전문가이고, 교실 밖에선 교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리치료사다. 특히 교사들의 자존감은 ‘우리 미래의 자존감’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아픈 교사들의 치유와 성장을 힘껏 돕고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 그의 삶에 강물처럼 흐른다.

글 박미경 | 사진 성민하

교사를 위한 심리치료 모임 ‘성장 교실’

그 사람의 표정만 보고 직업을 맞히라고 한다면, 서준호 교사는 ‘개그맨’이라는 말을 꽤 많이 들을 것 같다. 그만큼 익살스럽다. 상대방이 가볍게 웃을 수 있도록, 누구든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낯빛이며 눈빛을 오래 다듬어온 사람의 얼굴이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교사를 위한 공부 모임이자 심리치료 모임인 ‘성장 교실’을 8년간 운영해 왔어요. 선생님 20명과 1년간 집단상담과 멘토링을 진행합니다. 첫 달과 마지막 달에 LCSI(Lim's Character Style Inventory) 성격검사를 하는데, 우울과 불안같은 정서 영역은 물론 행동과 대인관계, 자아 강도 영역에서 거의 모든 선생님이 극적인 변화를 안고 졸업하세요. 번번이 뭉클합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심리극(사이코드라마)’이 있다. 심리극상담사 1급·2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 ‘외면하고만 싶었던’ 자신의 상처를 심리극으로 직면한 적이 있다. 힘껏 울고 마음껏 소리치며 과거의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치유의 시작이었다. 심리극에는 ‘역할 바꾸기’라는 활동이 있다. 상대방의 역할을 통해 나와 내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서 관점을 변화시켜 보는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심리극의 주인공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된다. 묻어둔 응어리를 밖으로 꺼내놓으며 무너진 마음을 같이 일으켜 세우는 시간. 그 감동은 매번 새롭고 그를 날마다 초심으로 이끈다.

교사의 자존감을 살펴야 하는 이유

“교사가 행복하고 건강하면 그 진동이 학생들한테 고스란히 전달돼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교사의 자존감이 ‘우리 미래의 자존감’인 이유예요. 주목할 것은, 교사들에겐 그들만의 자존감 원리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에요. 학생을 지도하는 직업이기에 자신에게 혹독한 완벽주의자들이 유독 많거든요. 교사를 향한 사회적 기대치를 신경 쓰느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면, 그 감정들이 쌓여 자존감이 갈수록 낮아지게 돼요. 엄격한 자기 평가에서 벗어나야 학생들과 건강하게 만난다는 걸 ‘성장 교실’을 통해 교사들 스스로 배워가고 있어요.”
교사의 자존감은 교사 한 사람만의 감정이 아니다. 교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학생, 학부모, 동료, 관리자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불어 성장 과정 시 형성된 자존감까지, 한 사람을 둘러싼 총제적인 상황과 인생의 흐름을 살피고 그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낼 때 자존감은 비로소 치유된다. 그의 저서 『교사의 자존감』은 교사들이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하고 어떻게 유지했는지, ‘성장 교실’에서 진행한 심리극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꼭 교사가 아니더라도, 너무 큰 책임감으로 마음의 병을 얻은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일상에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만의 작은 성공 경험을 꾸준히 쌓는 거예요. 이때 목표를 크게 잡지 않는 게 중요해요. 작은 목표라도 성공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살리는 보람

사실 그의 활동은 심리치료사보다 놀이전문가가 먼저였다. 2002년 광주의 살레시오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와 뮤지컬 제작을 담당하며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았다. 문제는 자신의 감정이었다. 작품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아주 사소한 것만 틀어져도 ‘화’가 났다. 관중 앞에서 멋지게 지휘하는 ‘나’와 아이들에게 수시로 욱하는 ‘나’의 불안한 공존이었다. 그러다 ‘연극 놀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교실 수업의 수준을 높이고 싶어 그를 변화시켰다. 자꾸 화를 내던 오케스트라 지휘 때와 달리, 내내 웃기만 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또 찾아왔다. 전근 후 새로운 학교에서 연극 놀이를 수업에 접목했는데, 좋아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고 실망감에 마음이 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수업 당시 제게 욕을 했던 아이가 졸업식 때 편지를 준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이가 안 좋은 아빠의 모습과 닮은 곳이 있어 화가 났던 것 같다.’라고 써있더군요. 왜 진작 이유를 알아보려하지 않았을까 후회되었습니다. 수업 기법은 최고라 자부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때부터 사람의 마음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원 연극치료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도 받았고요. 자연스레 교사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활동도 시작했어요. 연극 놀이 연수 때마다 아픔을 속으로 삼키며 울먹이는 교사들이 눈에 들어왔거든요. 심리치료사의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살리는’ 보람을 알게 됐어요.”
아이들과는 심리상담 대신 각종 놀이를 함께한다. 그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1년간의 시험지를 모아 바닥에 깔아놓고는 한 장씩 찢으면서 ‘시험 때문에 힘들었던 자신’을 안아주는 시간이다. 건강하게 분출하고 따뜻하게 다독이는 일련의 수업을 그는 ‘마음 흔들기’라고 부른다. 흔들림 뒤엔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치유센터를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사람과교육연구소’를 설립하고 ‘성장 교실’을 진행하면서 그 꿈을 이뤘어요. 남은 꿈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적 상처를 만나보고, 회복하는 구조를 파악해 마음이 아픈 교사를 한 사람이라도 더 치유하는 거예요. 쉽지 않지만,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한 꿋꿋이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가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전하는 말은 “괜찮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잘하고 있어요”다. 남에게 들려주는 말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따뜻한 사람들만이 스스로 오롯이 설 수 있음을 그의 미소가 보여주고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

“너무 큰 책임감은 외려 ‘독’이에요. 교사 특유의 엄격한 자기 평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학생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